
사람들은 살면서 하나씩 하나씩 인간이길 바라는 끈을 놓아버리는 것 같다.
노후의 삶은 어쩔 때는 비참하고, 어쩔 때는 가슴 아프고, 또 어쩔 때는 참 서글프다.
“젊었을 때는 내가 이렇게 늙을 줄 몰랐다.”
가끔 어른들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말이다. 누구나 늙는다는 것을 모르고 산 사람은 없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젊을 때는 지금의 내가 평생 계속될 것처럼 산다. 내 다리로 걷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가고 싶은 곳에 가는 일이 어느 날 어려워질 거라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아침이면 치매를 앓고 계신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린다.
“어머니, 건강하세요?”
“아침은 드셨어요?”
“오늘은 무슨 반찬 드셨어요?”
그런데 대답을 들어보면 가끔 헷갈린다.
정말 치매가 맞으신가?
어떤 날은 예전과 다를 것 없이 너무나 멀쩡하게 대답하신다. 그래서 ‘그때는 치매였고 오늘은 잠깐 괜찮으신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하나 있었다.
마침 시누이가 와 있던 어느 아침, 어머니가 변기 물에 세수를 하셨다는 것이다.
“물이 깨끗한데 뭐가 어떠냐.”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셨고 그 모습을 본 자식들은 경악했다.
당시에는 어머니를 모시는 문제로 집안이 꽤 시끄러웠다.
요양보호 일을 하는 큰집 손녀 쪽에서 어머니를 돌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찬장을 열어보니 반찬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고 한다. 그걸 본 삼촌과 고모들이 화가 났다.
“우리가 모시겠다.”
그렇게 어머니를 데리고 와 주간보호센터도 보내드리고 직접 모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그 ‘변기 세수 사건’이 터진 것이다.
갑자기 모두 자신이 없어진 모양이었다.
결국 요양원을 운영하는 큰집에 부랴부랴 연락해 다시 어머니를 부탁하게 됐다.
그때 우리는 조금 어이가 없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지금 생각해보면 엉뚱한 생각이 하나 든다.
혹시 어머니가 큰집 아주버니와 손주들이 보고 싶어서 일부러 그러신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지금 와서 알 방법은 없다.
그러면 또 어떠랴 싶다.
지금 어머니는 시설이 좋은 곳에서 지내시면서 아주버니도 보고 손주들도 자주 보신다. 아침마다 전화하면 밥도 드셨다고 하고 반찬 이야기도 하신다.
그 대답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다행이다.
오늘도 다행이다.
나는 어머니가 건강하셨을 때 친정엄마와 함께 여기저기 해외여행을 많이 모시고 다녔다.
그때는 힘들기도 했다.
두 분을 모시고 여행을 다니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챙길 것도 많았고 신경 쓸 것도 많았다.
그런데 이제 두 분 모두 예전처럼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그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골에서 평생을 사신 어머니에게 자식들과 여러 번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은 두고두고 자랑거리였다.
어디를 다녀왔고 무엇을 봤는지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하셨을 것이다.
그것이면 됐다.
효도라는 것도 때가 있는 것 같다.
돈이 더 생기면,
시간이 더 많아지면,
내가 조금 더 여유로워지면 잘해드려야지 생각하지만 부모님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 역시 늙을 것이다.
언젠가는 지금의 어머니처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은 부모님께 무언가를 더 해드리지 못했다는 생각보다 건강하셨을 때 함께 여행하고 좋은 것을 보여드렸던 시간을 떠올린다.
그래도 나는 할 수 있을 때 했다.
그것만으로 마음 한쪽이 조금 편안하다.
내일 아침에도 어머니께 전화를 드릴 것이다.
“어머니, 아침 드셨어요?”
“오늘은 무슨 반찬 드셨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평소처럼 대답하시면 또 생각할 것 같다.
다행이다.
오늘도 잘 계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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